부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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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치열하게 싸웠던 후한과 고구려, 그리고 부여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흉노를 정벌하고 사방을 침략하는것이 일상이었던 무제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선제라는 명군이 나타나 국가를 안정시키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의 아들인 성제가 모든 업적을 뒤엎는 암군이었던 까닭에 다시 국운이 쇠퇴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타난 외척 왕망은 한나라를 찬탈하고 자신의 외손자에게서 황제자리를 선양받았으며, 신나라를 세우고 급격한 개혁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지만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유수에게 패하고 다시 한나라가 들어섭니다. 그렇게 들어선 후대의 한나라를 이전과 구분해 후한, 혹은 동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한나라가 바로 후한입니다. 우리는 흔히 후한이 말기에 각지에서 일어난 군웅할거와 농민반란으로 멸망했다고 알고있..
2023.03.29 -
북부여의 민족영웅 동명성왕
고려시대에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을 기리는 사당이 지어져 건국시조로서 제사를 지낼만큼 고구려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 후기에는 그런 동명왕을 기리는 온갖 기록들이 나와 그를 칭송하였고, 동명왕은 우리의 민족영웅으로서 떠받들여지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만주에서 고구려인들이 세웠을 것으로 보이는 광개토태왕비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주몽을 추모대왕이라 밝히고 있을뿐 그를 직접 동명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주몽이 동명왕이었다면, 이 비석에서는 그의 업적과 유명세를 분명이 밝히면서 주몽을 직접 동명성왕이라고 칭했을 것입니다. 아마 후대로 전설이 계승되면서, 동명왕과 가까운 시기에 활동하면서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대왕과 서로 혼동이..
2022.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