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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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모용선비의 치열했던 싸움
고구려는 건국 초반부터 선비족과 싸워왔습니다.하지만 후한 말엽에 등장한 선비족의 전설과도 같은 영웅이었던 단석괴의 등장으로 선비족은 전성기를 맞았지만 단석괴가 죽고 난 이후 분열되었고, 그중에서도 모용선비는 고구려와 악연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러던 중 3세기쯤 모용선비는 굉장히 강성해져 예전에는 상국으로 모시던 부여와 고구려를 공격하기에 이릅니다.그중에서도 부여에 큰 타격을 입혀 285년 모용외가 이끄는 선비군은 부여의 도성을 함락하고 부여왕 의려가 자살했으며, 만명이 넘는 부여인들이 모용선비에 끌려가는 화를 입고 말았습니다. 이때 부여가 남긴 역사기록들도 전부 잿더미로 변했으며 그로인해 부여는 국력이 크게 쇠퇴하고 말았습니다.그래도 당시 서진왕조의 원조를 받으며 태자인 의라가 선비군을 물리치고 국가를 ..
2025.04.18 -
동아시아 역사를 뒤흔들어 놓은 선비족
선비족은 조선에 복속되어 있던 동호의 일파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동호는 강력했던 조선과 혼동되어 기록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였는데, 조선이 해체된 이후에는 선비족이 갈라져나오면서 독립된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선비족의 기록이 최초로 보이는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입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시절부터 활약한 장수인 부분노를 기록하는 가운데, 유리왕 시기에 고구려를 침범한 선비족을 굴복시켜 복속시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비족 전체를 복속시킨 것은 아니고 그 일파를 고구려가 속민으로 삼았던 모양입니다.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중원을 차지했던 서진왕조가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면서 화북지역은 텅빈 무인지경이 되어버렸는데, 이때 선비족이 연나라 지방을 차지..
2023.11.04 -
생각보다 치열하게 싸웠던 후한과 고구려, 그리고 부여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흉노를 정벌하고 사방을 침략하는것이 일상이었던 무제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선제라는 명군이 나타나 국가를 안정시키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의 아들인 성제가 모든 업적을 뒤엎는 암군이었던 까닭에 다시 국운이 쇠퇴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타난 외척 왕망은 한나라를 찬탈하고 자신의 외손자에게서 황제자리를 선양받았으며, 신나라를 세우고 급격한 개혁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지만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유수에게 패하고 다시 한나라가 들어섭니다. 그렇게 들어선 후대의 한나라를 이전과 구분해 후한, 혹은 동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한나라가 바로 후한입니다. 우리는 흔히 후한이 말기에 각지에서 일어난 군웅할거와 농민반란으로 멸망했다고 알고있..
2023.03.29 -
고구려 초기 군주들 성씨 변화와 태조왕
부여에서 건너온 주몽이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건국했을때,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자신의 성씨를 고씨로 바꾸었다고 나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는 추모태왕이 고구려를 건국한 후 고씨를 자신의 성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전하고, 자신이 나라를 세울수 있게 도와준 소서노와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 형제를 아들로 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여에서 이미 예씨와 결혼하여 장성한 아들인 유리가 고구려로 건너왔고, 결국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소서노의 아들을 대신해 유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합니다. 그런데 고구려 2대 태왕이 되는 유리태왕은 해씨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삼국유사 왕력 유리왕편에는 그의 성씨가 해씨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으니, 확실히 유리태왕은 해씨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었던듯 합니다. 다만 주몽의 성씨가 고..
2022.11.25 -
천하를 재통일한 수나라와 침략을 막아낸 고구려
588년, 수나라의 50만 군대는 남조를 멸망시키기위해 다시한번 강남으로 진군합니다. 이미 예전부터 북조에서 남쪽에 웅거하고 있는 남조를 공격한 적이 있지만, 그럴때마다 기라성같은 장군들이 등장하여 북조군을 깨뜨리고 강남의 평화를 지켰기 때문에 이번에도 진나라의 황제인 진숙보는 별다른 수비는커녕 후비들과 놀아나는 전형적인 암군의 모습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나라의 모든 수비전선이 무너지고, 결국 도성인 건강성에 입성한 수나라군은 빈 우물안에 숨은 진숙보와 후비들을 발견하여 북방의 장안으로 이들을 압송하고 맙니다. 이후 수나라군은 남쪽에 더이상 왕조가 생겨나지 않기위해 그동안 도읍이었던 건강성을 철저히 때려부수어 폐허로 만들고, 각지에서 저항하는 진나라군을 제압하여 결국 300여년의 혼란..
2022.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