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가장 눈부신 승리, 아우스터리츠 전투

2025. 1. 12. 11:55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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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등장한 이후 프랑스군은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원정과 더불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드는 군대를 격파하며 나폴레옹의 천재적인 지휘능력은 빛을 발했고, 결국 그는 공화국 프랑스를 대체하는 프랑스 제 1제국을 건설하며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1805년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영국의 수상 윌리엄 피트는 프랑스에 맞서기 위한 동맹을 조직해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 유럽대륙의 여러 강대국들을 끌어들여 프랑스를 고립시켰고 이런 상황에서 영국에 상륙하기 위한 프랑스 함대를 전멸시키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완승하며 영국의 우위가 굳어지는 모양새였습니다.

거기에 오스트리아군을 여러번 격파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잔존병력이 남아있었고, 러시아가 참전해 많은 군대를 보내면서 나폴레옹은 다시 어려워진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그래도 나폴레옹의 능력은 탁월했던지 울름전투에서 오스트리아의 주력군을 궤멸시켰고, 4만이 넘는 주력군은 결국 프랑스군에 항복해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까지 무혈입성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의 잔존병력이 후퇴하고, 정말 닥닥 긁어모은 군대와 함께 러시아의 주력군이 참전해 아우스터리츠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곳에서 나폴레옹의 천재적인 능력이 다시 한번 발휘됩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처음 만난 러시아군은 총사령관 쿠투조프의 전략에 따라 적진 깊숙히 너무 치고 들어온 프랑스군과 싸우지 않고 수비하다가 프러시아의 지원군과 합쳐 프랑스군을 공격하자는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울름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긴 했지만 이미 트라팔가르에서 주력함대를 몽땅 잃어버린 프랑스로서는 깊숙하게 오스트리아 영토 안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11월의 추운 겨울을 만났으며 보급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전략은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덯게든 나폴레옹과 싸우고싶어 안달난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1세의 고집으로 전투를 개시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놀라운 기동능력과 전투력을 보여줬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이 좀더 많은 상황에서도 프랑스군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압도하는 전투를 치렀고, 프라첸 고지를 점령하면서 러시아의 주력기병을 물리치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나마 러시아군은 주력병력이 궤멸되지 않고 보존하며 도망쳤지만, 오스트리아군은 완벽하게 밀리면서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고 프랑스군이 화력을 앞세운 공격을 보여주자 거의 모든 병력들은 도망치다가 호수에 빠져죽거나 프랑스군의 매복에 걸려 죽는등 대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우스터리츠의 전투 결과는 프랑스군의 완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7만 2천의 프랑스군은 전사 1300여명, 부상 7천여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은 8만 5천의 군대중 사상자가 15000명 이상에 포로만 12000명이 넘었고 이후 군대를 개편할수도 없이 병력들이 모두 흩어져버렸기 때문에 완패를 인정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군은 중대한 타격을 입고 프랑스를 막기위한 동맹에서 이탈했으며,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이 점령한 영토를 인정하고 전쟁배상금 4천만 프랑을 지불하며 곳곳에 영토를 할양하는등 완전히 체면을 구기고 말았습니다.

그로인해 명목상으로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름이 지속된 신성로마제국은 공식적으로 사라졌으며, 프로이센 역시 나폴레옹에 굴복해 절반이 넘는 영토를 빼앗기는 등 나폴레옹 최대의 영광이 아우스터리츠 전투로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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