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충신 악비와 만고역적 진회

2024. 7. 12. 11:0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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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는 금나라에게 도성인 개봉을 빼앗기고, 그나마 경제적 거점이던 강남지역을 보존하면서 버티는 중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송나라의 황족들이 금나라로 끌려간 상황에서 휘종의 아들인 조구가 즉위하여 남송을 세웠지만 이미 남으로 내려오는 금나라의 기병들로 인해 곳곳이 뚫리면서 수도였던 남경까지 함락되었고, 조구는 도망치다가 충격으로 고자가 될 정도로 허겁지겁 도망할수밖에 없을 정도로 송나라의 멸망이 임박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일어난 송나라의 군벌들이 금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군대가 악비가 이끈 악가군이었습니다. 악비는 한세충 등의 명장들과 함께 금군을 막아냈고, 회하 일대에서 국경을 수비하면서 금나라군이 더이상 내려오지 못하게 억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악비는 북벌을 강하게 주장하여 금나라의 명장인 올출이 이끄는 군대를 여러번 격퇴했습니다. 이후에는 북상하여 송나라의 수도였던 개봉 인근까지 진군하여 점령했으며, 올출은 결국 개봉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부하의 만류로 간신히 개봉을 수비하면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다만 송나라의 걱정거리는 악비가 전공을 세울수록 떨어지는 송나라 조정의 권위였습니다.

조구는 스스로 군주가 된 후에 금나라군이 쳐들어오자 싸우기는 커녕 바다를 통해 도망치기에 바빴고,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더욱 정통성도 없었으며 인심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각지의 군벌들이 일어나 조정의 큰 도움없이 금나라와 싸웠고, 그중에서도 악비는 개봉 인근까지 졈령해 이런 상황을 더욱 부채질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재상이던 진회는 악비의 군권을 회수하고 그를 수도로 불러들여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이것에 대해 한세충이 항의하자 분명 악비의 죄가 있을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변명하기 바빴으며, 결국 악비는 눈부신 전공에도 불구하고 39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살해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결국 금나라와 송나라는 화의를 체결했고, 금나라에게 나라의 절반과 막대한 세폐를 제공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으니 오히려 유리하게 이끌수도 있었던 화의를 스스로 불리하게 만든 고종 조구와 진회의 합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이후 진회는 고종 조구까지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권세를 키워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지만, 악비를 제거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후 군주가 된 효종에 의해 진회의 자손들이 죽어나가고 탄압받았으며, 악비는 악왕에 봉해져 군신처럼 추앙받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로인해 악비의 묘 앞에는 꽁꽁 묶여 무릎꿇은 진회부부의 석상이 설치되었고, 백성들은 이 석상에 침을 뱉으며 악비에 대한 추모와 진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표출했다고 합니다.

 

워낙 진회는 매국노와 간신에 대한 인상이 커서인지, 이후 중국인들은 진회의 이름인 회 자를 이름에 사용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성씨는 바꿀수 없지만, 진씨들은 진회와 같은 성씨임을 부끄러워했으며 후에 과거에 급제한 진씨가 악비의 묘에 찾아와 조상을 비난하며 악비에게 사과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중국인들의 마음이 어떤지 알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있어 매국노와 간신은 대한제국을 일제에 팔아넘긴 이완용이 대표적인데, 우리는 이완용을 욕하면서도 그와 이름을 동일하게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이점은 우리가 중국인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현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특히 대대로 보존되며 존경받던 악비의 묘는 문화대혁명때 홍위병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그의 유골은 파헤쳐져 흩어지고 불에 타버렸다고 하니 악비로서도 어이가 없을 일입니다.

또한 중국 공산당이 동북공정과 서남공정 등의 역사조작을 시도하면서 한족들의 민족영웅이었던 악비의 평가마저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전에는 여진족에 맞서 한족을 지켜냈고, 결국 간신의 모함에 걸려 억울하게 죽은 민족영웅이라는 평가였는데 이제는 중국내 민족끼리의 내전에서 운나쁘게 희생된 사람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진회를 민족끼리의 융합에 힘쓴 본받아야 할 위인이라고 치켜세우는등 평가를 완전히 뒤집고 있으니, 과연 저승의 악비와 진회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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