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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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후한의 운명을 가른 좌원전투
좌원고구려를 크게 일으킨 태조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차대태왕은 폭정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나중에 쫓겨나 죽은 차대태왕은 역사의 패자이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듯하고, 이런 정권교체의 과정에서 명림답부라는 명재상이 등장해 고구려를 구하게 됩니다. 명립답부는 서기 165년 폭정을 일삼는 차대태왕을 제거하고 아우인 신대태왕을 고구려의 군주로 만들었는데, 이때 나이가 99세였다고 합니다.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인지, 신대태왕은 가장 높은 자리인 국상을 신설해 명립답부를 국상으로 임명하며 고구려의 실권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구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후한이 고구려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신대태왕 4년에 현도태수 경림이 우리군사 수백을 죽이자 ..
2025.02.15 -
생각보다 치열하게 싸웠던 후한과 고구려, 그리고 부여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흉노를 정벌하고 사방을 침략하는것이 일상이었던 무제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선제라는 명군이 나타나 국가를 안정시키는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의 아들인 성제가 모든 업적을 뒤엎는 암군이었던 까닭에 다시 국운이 쇠퇴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나타난 외척 왕망은 한나라를 찬탈하고 자신의 외손자에게서 황제자리를 선양받았으며, 신나라를 세우고 급격한 개혁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지만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유수에게 패하고 다시 한나라가 들어섭니다. 그렇게 들어선 후대의 한나라를 이전과 구분해 후한, 혹은 동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한나라가 바로 후한입니다. 우리는 흔히 후한이 말기에 각지에서 일어난 군웅할거와 농민반란으로 멸망했다고 알고있..
2023.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