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정권과 인조의 무능함이 촉발한 이괄의 난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비참한 상황을 어느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도 있기는 했지만, 정치적인 능력은 떨어졌던 모양입니다.누르하치의 여진족이 강성하면서 서북쪽의 군사를 강화해야 했고, 명나라가 원병을 요청해 함께 싸운 사르후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그동안 힘들게 키워낸 정예병들도 죽거나 포로로 잡히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그러는 가운데 집권하던 북인정권은 광해군을 부추겨 많은 왕족들을 살해하고 공안정국을 만들었으며, 급기야는 선조의 비였던 인목대비까지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함으로써 서인과 능양군에게 공격받을 약점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광해군은 백성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궁궐을 짓고 일부 총애하는 신하와 궁인이 권력을 남발하는것을 막지 않았고, 결국 인조가 되는 능양군과 서인의 우두머리가 결국 광해군을 ..
2024.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