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평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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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도 찾지 못한 고구려의 도읍 평양
우리는 그동안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평양이 평안도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상식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로 일컬어지는 세종조차 고구려의 도읍 평양이 평안도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수 없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과연 지금의 평안도 평양이 왜 고구려 마지막 수도였다고 하는지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는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 9년 3월 13일에 세종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예조판서 신상이 말하기를, 삼국의 시조묘를 각기 도읍한 곳에 세우려고 하는데 신라는 경주이고 백제는 전주이겠지만 고구려의 도읍이 확실치 않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신라의 도읍은 경주가 맞지만, 백제의 도읍이 왜 공주나 부여가 ..
2023.09.06 -
장수태왕보다 먼저 평양으로 천도한 동천태왕
우리는 흔히 고구려가 건국된후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한 후, 장수태왕 시기에 평양으로 천도한 사실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668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평양이 함락되면서 고구려가 멸망한 것으로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잘 살펴보면 고구려는 국내성으로 천도한 이후 수도를 옮겼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집안현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학자인 도리이 류조가 별다른 근거 없이 그곳을 고구려의 국내성으로 비정해버렸고, 우리는 별다른 비판의식없이 국내성을 집안이라고 가르쳐온 것입니다. 동천태왕이 한창 요동지역에 있던 공손씨와 싸우고 있을무렵, 당시 중국은 삼국지의 배경이었던 삼국 분열시기였습니다. 원래 남쪽 오나라의 손권이 요동에서 할거중이던 공손연과 ..
2023.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