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고구려 초기의 왕자들
고구려의 2대 태왕으로 즉위한 유리태왕은 동부여와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당시까지는 동부여보다 국력이 약한 고구려였기 때문에 동부여왕 대소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수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기원전 6년 유리태왕은 자신의 큰아들인 도절을 부여에 인질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던 도절은 부여에 가기를 겁냈고, 그로인해 대소가 쳐들어와 고구려와 싸웠지만 마침 내린 큰 눈으로 인해 손해만 보고 물러났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동부여의 요구는 계속되었고, 유리태왕은 부여와 화친하기 위해 강경론을 주장하는 신하들을 제거한후 다시 도절을 인질로 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10대 후반으로 성장한 도절이 태자가 되어 부여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전히..
202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