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령(2)
-
고려의 쌍성총관부 수복과 철령위 문제
고려는 몽골과의 전쟁중에 잇따라 나타난 민족 반역자들에 의해 땅을 빼앗겼습니다. 서경과 주변 40여 성은 최탄 등이 반란을 일으켜 점령했다가 몽골에 투항하면서 직할령인 동녕부로 편입되었고, 화주 일대의 땅은 조휘와 탁청 등이 이끈 반란군에 의해 쌍성총관부가 설치되어 몽골에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고려가 그 일대의 땅을 잃은지 99년이 되는해에, 고려의 새로운 군주가 된 공민왕에 의해 고토수복전쟁이 시작됩니다. 우선 공민왕은 1356년 인당을 서북면병마사로 삼아 압록강을 건너 서쪽의 8참을 공격하게 하였으며, 유인우를 동북면병마사로 삼아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고려의 영토로 회복했습니다. 쌍성총관부는 이때 고려의 영토로 돌아왔지만, 생각보다 이 문제는 간단해보이지 않습니다. 이후 고려의 영토로 돌아온 후에도..
2024.01.03 -
윤관의 여진정벌과 북방영토
고려의 15대 황제인 숙종은 조카에게서 찬탈한 것과 다름없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인지, 무언가 크게 보여주는 정책을 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문종때 고려에 귀부하여 제후로 있던 여진족들이 있긴 했지만 마침 완안씨부족이 강해지면서 고려와 충돌하고 있었고, 결국 고려와 친한 여진족들을 굴복시켜 고려와 직접적인 전면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문종때의 태평시대를 지나온 고려군의 약체화 때문이었는지, 고려군이 여진에게 완패하고 말았습니다. 원래 고려의 제후국에 지나지 않았던 여진에게 패배한 충격이 상당히 컸던 모양이었는지 당시 숙종은 여진에 맞설 강력한 기병을 만들고 다시한번 여진의 완안씨와 싸우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군사육성이 바로 완성되는것은 아니었던지 숙종이 죽고 그의 아들인 예종이..
202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