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후한의 운명을 가른 좌원전투
좌원고구려를 크게 일으킨 태조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차대태왕은 폭정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나중에 쫓겨나 죽은 차대태왕은 역사의 패자이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듯하고, 이런 정권교체의 과정에서 명림답부라는 명재상이 등장해 고구려를 구하게 됩니다. 명립답부는 서기 165년 폭정을 일삼는 차대태왕을 제거하고 아우인 신대태왕을 고구려의 군주로 만들었는데, 이때 나이가 99세였다고 합니다.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인지, 신대태왕은 가장 높은 자리인 국상을 신설해 명립답부를 국상으로 임명하며 고구려의 실권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구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후한이 고구려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신대태왕 4년에 현도태수 경림이 우리군사 수백을 죽이자 ..
202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