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 세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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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장종
금나라 세종은 올바른 정치를 시행했기 때문에, 금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룩한 위대한 군주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30년 가까이 재위하면서 정치적인 안정을 이룩했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위엄을 보인 탓에 금나라가 이시기 최강국으로써의 모습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너무 오래 재위해서인지 그의 아들은 군주의 자리도 올라보지 못한채 죽어버렸습니다. 세종은 어쩔수 없이 손자인 완안마달갈을 황태손으로 봉해 그를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세종이 결국 1189년 승하하자 마달갈이 계승하게 되어 장종이 된 것입니다. 장종은 정치적인 능력이 할아버지인 세종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방의 타타르가 금나라를 침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괴로움을 겪었고, 이것을 진압하기 위해 금나라의 정규군만으로 부족한 가운데 몽골부..
2024.02.23 -
남송의 유일한 명군 효종
금나라에게 나라의 절반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달아난 송나라는 지속적인 금나라의 침입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장강 이남에 위치한 건강은 남북조시대의 남조가 도읍으로 두었던 곳이라 험준한 지형과 방어가 엄중한 곳이었지만, 금나라의 왕자 김올출이 이끈 금군은 회수이북의 모든 땅을 빼앗고 장강을 넘어 건강까지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모든 황족들이 금나라에 잡혀가 어부지리로 황제가 되었던 고종은 혼비백산하며 남쪽으로 도망갔고, 그러는 와중에 너무 놀랐던 모양인지 이런 도주과정에서 성기능을 상실하여 고자가 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남쪽으로 도망친 송나라의 조정은 모든 권위를 잃어버리고 패주하였으며, 그나마 당시 유명한 악비가 이끄는 군대와 한세충 같은 장군들이 분전하여 금나라군을 북쪽으로 다시 밀어낼수 있..
2023.11.17 -
금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끈 세종
우리 역사중 세종이라는 시호를 받은 군주는 조선의 세종이 유일합니다. 조선의 세종은 재위기간 내내 괜찮은 정치를 폈으며, 문화와 과학기술 그리고 농업진흥 등의 다방면의 업적을 남겨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원래 세종이라는 묘호는 국가에 큰 업적을 남긴 군주들에게 부여되는 호칭입니다. 물론 명나라의 세종은 북로남왜라는 사건과 엄숭일당의 공포정치로 세종이라는 시호가 아까운 암군이었지만, 그 외의 세종이라는 묘호를 받은 군주들은 상당히 업적을 남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금나라의 세종은 전임 황제였던 희종과 해릉왕의 실정을 바로잡고, 금나라의 통치체제를 다시 정비했으며 어려웠던 금나라를 일으켜세운 군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금나라의 세종 완안오록은 1123년 여진족인 아버지와 발해인인..
202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