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패한 댓가로 다가온 고려와 조선의 역사

2022. 3. 23. 16:33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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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가 대륙에서 몽고군에 쫓겨 연전연패하고 있을 무렵, 고려도 몽고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고려 국경으로 쫓겨 들어온 거란을 평정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고려에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던 몽고였지만, 당시 고려의 공물을 독촉하고 돌아가던 사신 저고여가 피살된 것을 계기로 고려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1231년 시작된 고려와 몽고의 전쟁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특히 귀주성에서 박서와 김경손이 성을 잘 지켜 몽고군이 물러갔지만 국경의 철주나 통주같은 곳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포로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동안은 금나라 공략을 위해 고려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몽고지만 1232년 금나라의 개봉을 구원하러 움직이던 주력군 15만을 삼봉산에서 전멸시키게 되고, 금나라가 자랑하던 완안진화상 등의 기라성같은 명장들도 모두 전사하게 되니 이제는 금나라를 신경쓰지 않고 고려에 다시 침입하게 됩니다.

결국 고려에 7차례 침입하게 되고 도중에 용인이나 충주, 원주 등지에서 소규모의 승리를 거두긴 하지만 고려의 주력군이 모두 강화에 있는동안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거나 죽게 되고 결국 몽고에 항복하며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하지만 고려가 전쟁에 진 댓가로 고려 정규군의 규모를 늘릴수도 없었고, 국경에 있는 성을 수리하거나 군사력 강화에 힘을 쓸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려 바로 옆에 심양왕을 설치하여 고려국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삼았고, 툭하면 연경에 있는 원 황제의 견제와 간섭으로 고려의 자주적인 정책은 펼쳐볼수도 없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덕분에 고려 말에 원나라군에 쫓겨 고려로 들어온 홍건적을 막지 못하고 송경이 함락되어 공민왕이 복주로 피난하는 일이 발생했고, 남쪽에서는 왜구가 출몰하여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가고 재물을 약탈하는 와중에서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홍건적의 침입으로 회복할수 없는 상처를 입고 왜구에게 시달린 고려왕조는 찬탈자인 이성계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물러나게 되고 그렇게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그렇게 큰 상황이 반전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난 이후에 다시 새롭게 일어난 여진과의 전쟁에서 또다시 전쟁에 패한 조선은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는 굴욕을 당하고 속방으로 편입되고 맙니다.

거기에 또다시 전쟁에 졌기 때문에 서북쪽에 있는 산성을 고쳐 쌓지도 못했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에도 제약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도성방비를 위해 북한산성을 고쳐쌓고 남한산성을 수리할때도 청나라의 항의를 받아 기껏 고쳐쌓은 성을 허물어 버릴 정도였으니 온갖 감시와 견제가 심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청나라가 조선에 세작들을 풀어 계속해서 감시했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도 역시 고려처럼 국방강화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조선 후기에 동양으로 밀고 들어오는 서양 세력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했고, 국내에서 일어난 농민반란도 청의 손을 빌려 진압하려는 탓에 청과 일본이 우리땅에서 전쟁을 해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후에는 일본에게 국권까지 빼앗기는 일로 이어지니 이런 점이야말로 우리 역사에 반복된 비극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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