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멸망직전까지 로마를 몰아붙인 한니발

hasutalchul 2025. 5. 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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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는 로마와의 1차 포에니전쟁에서 패하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동안 지중해 곳곳의 식민지들을 전부 포기해야했고, 해상무역도 전부 빼앗긴 상태에서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물어야했으니 유서깊은 카르타고인들의 자존심이 완전히 상처입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장군 한니발의 등장으로 반전을 맞이합니다.

그는 뛰어난 장군이었던 아버지 하밀카르를 본받아 히스파니아 일대에서 군 경력을 쌓았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27세의 나이에 히스파니아 주둔군의 장군이 되며 카르타고 본국과 병사들의 신임을 받는 명장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히스파니아 일대에서 세력을 키우던 한니발은 로마와 동맹이었던 사군툼을 공격해 점령하며 다시한번 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히스파니아에 주둔하던 정예병을 선발해 4만이 넘는 군사들은 로마의 추격과 매복을 피해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로마로 지군했으므로, 평야지대에서 한니발을 막기위해 주둔하던 로마군은 전투도 해보지 못한채 이들을 추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번 한니발은 병사들과 기병, 그리고 전투용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었습니다. 

물론 험준한 산맥을 통과하는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병력의 40퍼센트 가량이 알프스에서 죽어나갔으며, 알프스에 거주하던 갈리아인들은 이들을 끊임없이 공격해 괴롭혀 많은 병력이 로마와 싸워보지도 못한채 죽어갔습니다.

그렇게 힘든 진군을 거듭하는데도 카르타고군은 한니발을 믿고 결국 불굴의 의지로 북이탈리아 지방에 도착하게 됩니다.

 

3만여로 줄어든 병력이었지만 한니발은 이들을 막고자 달려온 스키피오의 로마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로마군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입고 지휘관이었던 스키피오는 중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달아났으며, 이로인해 북이탈리아 지방의 패권은 한니발로 넘어가 곳곳이 함락되고 약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셈프로니우스와 스피키오의 군대를 트레비아 전투에서 크게 격파하며 로마군은 포강 이남으로 쫓겨 내려가는 처지가 되고, 한니발은 로마로 진군하면서 빠르게 서둘렀기 때문에 병을 얻어 한쪽 눈을 잃고 애꾸가 되었지만 진군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플라미니우스의 로마군은 한니발을 막으러 달려왔지만 우선 공격하지 않고 병력을 모으며 한니발의 애를 태웠지만, 결국 카르타고군의 매복과 전술에 걸려들어 정예병 15000명이 궤멸당하고 맙니다.

이렇게 이탈리아 본토에서 한니발을 막지 못하자, 로마의 집정관인 파비우스는 전투를 최대한 피하고 병력을 집결시켰으며 카르타고군의 보급을 차단하고 최대한 한곳에 몰아넣어 이길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하지만 남부 이탈리아의 곡창지대인 칸나이 일대를 점령한 한니발이 보급에 우선 숨을 돌리게 되자, 더이상은 미루지 못하고 집결한 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의 큰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렇게 발생한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눈부신 전략과 정예병들의 활약으로 로마군을 완전히 궤멸시켰습니다. 이 전투에 투입된 로마군 9만명 중에서 5만은 전사했고, 3만은 포로로 잡혔으며 나머지는 흩어져 달아났다고 하니 한니발의 전투중에서 가장 큰 승리이자 로마의 가장 큰 굴욕적인 패배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눈부신 승리에도 불구하고 한니발은 로마를 직접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로마시가 견고한 성으로 둘러쌓여있긴 하지만, 왜 그렇게 큰 승리를 거둔 상태에서 로마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한니발의 판단으로 당시 로마를 공성전으로 이길수 없다는 판단하게 공격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훗날 한니발이 결국 실패하는 큰 실책으로 남았습니다.

로마는 칸나이 전투에서 병력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병력을 모아 한니발에 맞섰으며 예상보다 로마를 배신하고 카르타고편으로 붙는 도시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니발은 고립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에 카르타고군의 보급을 막고 제해권을 장악한 로마해군 덕분에 한니발은 물자와 병력을 더 보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히스파니아를 비롯한 곳의 카르타고군이 계속 패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니발은 단 한번 보급을 받은채로 13년동안 적진 한가운데서 싸웠던 것입니다. 

 

그래도 한니발의 능력과 전투로 단련된 정예병들은 이후에도 로마군을 여러번 무찔렀고, 중부 이탈리아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로마를 압박했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로마의 명장 스피키오가 히스파니아 일대의 카르타고군을 전부 무찌른후 카르타고 본국을 공격했는데, 카르타고의 사정이 좋지 않아 강화를 맺었고 그렇게 한니발은 13년동안 누비던 이탈리아를 떠나 카르타고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한니발의 정예병이 전부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전쟁의 승패는 이미 갈린 상황에서 카르타고는 다시 전쟁을 결의합니다. 한니발은 로마의 실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이제는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억지로 전쟁터로 보내져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미 20년 가까운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많은 병력을 잃었고, 전쟁물자도 부족한 상태에서 로마의 명장인 스키피오가 이끄는 대군과 맞붙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한니발의 병력은 너무 적었고, 그의 전술과 능력을 파악해 완벽히 모방한 스키피오의 로마군에 대패하면서 카르타고는 또다시 전쟁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한니발은 카르타고를 탈출해 동쪽의 셀레우코스 왕조로 도망쳤지만 군사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고 로마에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동쪽에 위치한 아르메니아로 갔다가 비티니아로 망명해 로마군을 무찌르는 전과를 올렸지만, 결국 로마의 협박을 견디지못하고 그를 로마로 넘기려하자 독을 마시고 음독자결하며 파란만장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렇듯 한니발은 비록 로마를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최후의 승리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3년동안 이탈리아 본토에서 활동하며 여러번 로마군을 무찔렀고, 특히 칸나이전투에서는 로마의 정예병을 궤멸시키며 가장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거기에 5만이 채 되지 않는 원정군을 이끄는와중에도 병사들을 배려하는 성격과 뛰어난 지휘로 정예병으로 양성해냈으며, 나중에 보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한니발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능력이 대단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정말 남이탈리아에서 적절한 보급만 받을수 있었어도, 최소한 카르타고의 국력이 좀더 커서 로마군이 큰 패배를 겪고난후 더 큰 공세를 펼칠수 있었더라면 로마는 진작 함락되어 카르타고의 최종승리로 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최종적인 패자가 된 한니발이지만, 이후 로마군의 교리에 그의 전투이론이 반영되어 훗날 최강 로마제국을 건설하는 토대가 되며 명장으로 칭송받았으니 그는 불세출의 장군이었던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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