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의 명나라 주상락과 주상순
명나라의 13대 황제 만력제는 거의 20년간 정사를 게을리하며 놀았던 무능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나마 재위 초반에는 명재상 장거정의 도움으로 개혁을 성공시키며 명나라의 새로운 힘을 키웠지만, 장거정이 실각한후 부터는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고 이런 인물이 수명은 길어서인지 48년간 재위하며 명나라의 멸망에 큰 기여한 암군이기도 합니다.
이런 만력제는 아들이 없었는데, 어쩌다 궁녀인 왕씨를 만나 동침한후 아들을 얻게되는데 그가 바로 만력제의 장남인 주상락이었습니다.
하지만 만력제는 장남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총애하던 숙빈 정씨가 아들을 낳기만을 고대했으며 결국 정씨가 삼남인 주상순을 낳자 대놓고 편애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고있던 숙빈 정씨는 만력제에 매달려 자신의 아들인 주상순을 태자로 삼기를 바랐으며, 만력제 역시 주상순을 총애하여 태자로 삼을 기회만 노렸다고 합니다.
비천한 어머니 왕씨와 거의 죽은듯 갇혀살았던 주상락은 황자로써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나중에야 교육받기 시작했는데도 주변의 환관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으며 모두가 주상순이 태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 덕분인지 대접받지 못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야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조정 대신들은 장남인 주상락을 태자로 삼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지만 오히려 만력제의 분노를 사 쫓겨났으며 이로인해 태자의 자리를 놓고 황제와 대신들이 대치하는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이런 불똥은 오히려 조선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당시 선조의 장남인 임해군은 개차반같은 망나니에 인간쓰레기였기 때문에 자연히 차남인 광해군이 세자가 되는것에 반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조선의 세자를 차남인 광해군으로 책봉한다면 명나라에서도 삼남인 주상순이 태자가 될수도 있기 때문인지, 명 조정 대신들은 이런 상황을 반대하며 조선의 세자책봉마저도 미루었고 이것 덕분에 광해군은 자리를 위협받으며 정신병이 커져간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숙빈 정씨는 귀비로 책봉되어 주상락의 어머니 왕씨보다 품계가 높아졌고, 더욱 정씨의 눈에 거슬린 이들 모자는 계속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람을 보내 이들을 감시하며 온갖 모함과 독살 위협을 받으면서도 왕씨와 주상락은 모진 시기를 견뎌야만했으며 결국 주상락이 성인이 된후 태후 이씨의 도움으로 간신히 태자자리에 오를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귀비는 이들 모자를 떼어놓았으며, 왕씨는 결국 쓸쓸히 숨을 거두고 묘자리마저 초라한 산기슭에 써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혼자남은 주상락은 자신을 보호해주던 태후 이씨마저 세상을 떠나자 더욱 정신적으로 힘들어했고, 이런 상황을 이용해 귀비 정씨와 주상순은 어떻게든 그를 제거하기위해 온갖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을무렵 갑자기 만력제가 죽어버렸고, 황제는 태자인 주상락이 승계하며 정귀비와 주상순은 오히려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정귀비는 새로 황제가 된 주상락에게 아첨하며 단약과 미녀를 뽑아 보내는등 살기위한 노력을 했으며, 그 덕분에 정귀비와 주상순은 목숨만은 건질수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 황제가 된 주상순은 연호를 태창으로 바꿔 태창제로 불립니다.
태창제는 아버지의 잘못된 점을 고치고 정사를 열심히 돌보았으며, 각지에 백성들을 수탈하기 위해 파견한 환관들을 다시 불러들여 세금을 줄여주었습니다. 또한 열심히 수탈해 황궁에 쌓아놓기만 했던 황실의 내탕금을 요동으로 보내 후금을 방어하는데 고생하는 군사들을 위해 쓰게 했으며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등 아버지 만력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명군으로서의 기대감을 갖게만드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창제는 정귀비가 보낸 미녀와 너무 질펀하게 놀아나 건강을 해쳤으며, 신하들이 정력보강을 위해 올린 약을 먹고 더욱 몸상태가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가지 약을 먹다가 오히려 몸을 더 망치고 말았으며, 이로인해 재위한지 29일만에 급사하며 명나라 역대 황제중에 가장 짧은 재위기간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런 태창제의 죽음은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국가가 정상화되려는 상황에서 정귀비가 올린 약과 미녀를 가까이했다가 황제가 급사했다는 점에서 정귀비의 짓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지만, 이후 주상순은 황제가 되지 못하고 낙양 일대의 복왕으로 책봉되어 정계에서 밀려나고 말았으니 태창제의 죽음은 풀리지않는 수수께끼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주상순은 낙양 일대의 백성들을 심하게 착취하고 온갖 재물을 모으는데 급급해 많은 원성을 샀으며, 그로인해 명나라 조정에도 그를 탄핵하는 의견들이 많았지만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명나라 말기에 일어난 이자성군이 낙양 일대를 공격할때 복왕 주상순은 긁어모은 재물을 아끼며 병사들과 장수들을 독려하지 않아 오히려 견고한 낙양성이 함락되었고, 주상순은 150kg 이 넘는 몸을 이끌고 도망치다 잡혀 참수당했다고 합니다.
복왕부에는 그가 축적한 수많은 재산과 산더미같은 식량이 쌓여있어 기근에 시달리던 이자성군의 큰 힘이 되어버렸고, 죽은 주상순은 그를 증오하던 낙양일대 백성들이 조각내어 씹어먹었다고 하니 정말 비참한 최후가 아닐수 없겠습니다.
명나라의 대표적인 암군인 만력제는 두 아들을 두었지만 그나마 재능이 있던 장남은 황제가 된 후 바로 죽어버렸고, 총애하던 다른 아들은 그것을 등에 업고 백성을 착취하며 재산만 쌓아놓다가 고스란히 반란군에게 넘겨주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명나라가 멸망한 것은 확실히 만력제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볼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