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에서 황제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유유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은 일개 평민이었지만 결국 항우를 이기고 새로운 나라를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의 몰락한 황족이던 유비는 한때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이을 정도로 전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익주와 한중을 탈취하면서 촉한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들과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 유유 역시 성씨에 알수있듯 유방의 먼 후손인데, 그가 태어난 363년에는 이미 몰락해 농사를 짓고 풀을 베며 가축을 먹이는 전형적인 농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유 역시 몰락한 집안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고리대금 에 신음하는등 여러 고생을 하면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힘이 세고 키가 큰 장점을 살려 동진 북부군의 수장인 유뢰지의 부하가 되었는데, 당시 동진왕조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남방인들을 이끌고 손은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군사력이 분산된 동진의 정규군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는데, 운나쁘게 유유를 만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자리부터 시작한 유유는 여러차려 손은의 대군을 격파하면서 승승장구했고, 나중에 대군을 이끌고 동진의 수도인 건강성을 포위한 손은을 물리치며 그의 이름을 크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서기 402년에는 동진의 권력자였던 환현이 라이벌이던 유뢰지를 죽이고 그의 장군들 역시 죽였는데, 다행히 상대적으로 낮은 자리에 있던 유유는 살아남았습니다.
결국 모든 방해물을 제거한 환현은 동진의 황제를 협박해 선양받고 초나라 황제를 자칭했지만, 은밀히 모여든 동진의 신하들과 유유가 환현을 제거하기 위한 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렇게 유유가 중심이 된 거사가 성공해 환현은 수도인 건강을 버리고 형주로 도망쳤으며,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은후 동진의 안제가 다시 복위하며 동진왕조를 살려낸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유유가 동진의 권력을 잡았을때, 그 역시 동진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야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까지 여러사람이 시도했지만 완수하지 못한 북벌의 전공을 세워 선양을 받으려 한 것입니다.
우선 유유는 북방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후진의 요흥에게 낙양 동쪽의 땅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유유의 명성을 들었던 요흥은 순순히 땅을 내놓게 되고, 싸우지도 않고 하남 일대의 땅을 되찾은 유유의 명성은 더욱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역량을 모아 모용선비가 장악하고 있던 산동일대의 남연을 공격했습니다. 결국 남연의 수도인 광고를 함락시키고 모용초를 사로잡아 건강에서 참수하는 개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남과 산동일대를 점령한 유유지만, 그의 명성이 커지면서 그를 시기하는 세력들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며 유유의 권력은 단단해졌고, 거의 독립된 상태로 할거하던 익주 역시 유유의 수중으로 들어오며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런후 유유는 북벌을 재개하게 됩니다.
우선 후진과 싸우려는 유유군을 탁발선비의 북위군이 막아섰는데, 이때 전군을 초승달 모양의 각월진으로 전개해 북위의 10만 대군을 격파했습니다.
이후에는 유유의 심복인 단도제가 낙양과 허창을 함락시켰으며, 결국 후진의 수도였던 장안을 빼앗으며 진나라가 빼앗겼던 수도인 낙양과 장안을 100여년만에 다시 북방민족의 손에서 되찾게 된 것입니다.
이 기세를 몰아 서진의 나머지 영토로 되찾으려던 찰나, 유유의 심복인 유목지가 병으로 죽자 권력의 공백을 두려워한 유유가 급히 건강으로 귀환했으며 결국 힘들게 되찾은 장안은 바로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진의 수도였던 낙양 일대는 아직 유유의 수중에 남았으며 결국 이런 전공을 바탕으로 동진의 황제였던 사마덕문에게 선양을 받아 새로운 송왕조를 건국하게 된 것입니다.
유유가 세운 송왕조는 훗날 조광윤이 세운 송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유송왕조라고 불리는데, 이렇듯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유유는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기위해 자신이 예전에 사용하던 농기구를 전시해 그들의 후손들에게 어려움을 잊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후손들은 전혀 그런점을 본받지 못하고 그저 권력만 탐하는 한심한 인간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후손이었던 효무제는 전시해놓은 농기구를 보며 천한 늙은이가 황제가 되어 지나치다는 패륜적인 말을 늘어놓을 정도였으며, 군주의 자리에서 온갖 막장행각과 패륜, 살인을 일삼다가 폐위된 폭군이 둘이나 나올 정도로 유송왕조의 자식농사는 정말 대실패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특히 유유는 동진의 황제였던 사마덕문을 엄중히 감시하고 있다가 결국 몰래 살해했는데, 이로인해 선양을 받아 물러난 왕조의 황족들은 전부 죽음을 당하는 아름다운 선례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유송의 마지막 군주였던 순제는 나라를 빼앗긴 뒤에 다시는 황제의 집안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유언을 남기고 살해당했으니, 유유가 시작한 선례는 결국 그의 후손들까지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유유는 평범한 농사꾼으로 태어났지만, 그의 비범한 능력으로 인해 결국 황제까지 올라간 인물입니다.
한고조 유방과 명태조 주원장 역시 농민으로 시작해 황제까지 된 인물들이지만, 순수한 자신의 능력만으로 황제가 된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중에서는 유유의 능력이 가장 탁월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자식농사를 실패하면서 유송왕조는 59년이라는 단명왕조로 남았고, 온갖 막장과 패륜이 판치는 판국에 유송이 멸망할때는 슬퍼하는 사람도 없을 정도였다니 유유의 창업은 한낱 꿈과 같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