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금나라를 망친 위소왕과 선종

hasutalchul 2024. 11. 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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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세종은 위대한 군주였지만, 그의 후손들은 변변치않은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세종의 뒤를 이은 장종은 후사를 자신의 삼촌인 위소왕에게 넘기고 이후 자신의 아들에게 다시 돌려줄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종의 아이를 가진 후궁을 바로 처형해버린 위소왕 덕분에 이런 약속은 휴지조각처럼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렇게 1208년 즉위한 위소왕은 미남에 검소한 생활을 하는 인물이었지만, 무능하면서도 귀가 얇은 인물이었다는 평기를 받습니다. 그래서인지 북방 몽골일대를 통일한 칭기즈칸은 위소왕이 금나라의 황제가 되었다는 말을 듣자 금나라 사신 앞에서 위소왕을 경멸하면서 침을 뱉을 정도였지만, 위소왕은 칭기즈칸을 응징하지도 못한채 시간만 보냈습니다.

 

금나라의 장종이 죽고 5년여간 재위한 위소왕의 존재는 금나라에 있어 큰 재앙이었습니다.

이후 몽골과 싸워야할 중요한 시기에 위소왕은 별다른 일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으며, 결국 금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한 몽골에 의해 곳곳의 요새들이 돌파당하며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특히 1211년 수도로 진격해오는 몽골군을 맞아 싸우던 금나라의 주력군 50만이 전멸하면서 방어선이 완전히 뻥 뚫려버렸고, 곳곳에서 거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결국 위소왕은 승상이던 흘석렬호사호의 손에 암살당했고, 장종의 이복형이었던 선종이 즉위하면서 몽골에 막대한 보물과 물자를 제공하면서 화친을 구걸하는 굴욕을 맛보았습니다.

 

선종은 위소왕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그를 폐주로 간주하며 몽골과의 전쟁에서 패한 원인을 전가했으며, 몽골이 두려운 나머지 수도마저 중도에서 남쪽의 변량으로 옮겨버렸습니다.

천도에 반대하는 수많은 목소리를 모두 무시하며 남쪽으로 도망간 선종은 놀기 바빴으며, 조정에 바치는 소와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백성을 괴롭히고 몽골을 수비하는 일에는 등한시해버렸습니다.

이러한 일을 배신행위로 간주한 칭기즈칸은 즉시 내려와 금나라 수도인 중도를 함락시켰으며, 수많은 수비군들과 하북일대의 넓은 땅이 몽골의 손이 넘어갈때도 선종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북방의 넓은 영토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선종은 남쪽의 송나라와 손을 잡고 몽골과 싸울 생각은 커녕 송나라의 영토를 빼앗아 근거지로 삼을 생각에 몽골을 막을 전력을 동원해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의 방어선은 단단했고, 전력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송나라를 이기지 못한 금나라의 군사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다만 칭기즈칸이 눈을 돌려 서쪽의 호라즘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금나라를 방치한 덕분에 어느정도 영토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다시 몽골이 쳐들어오면서 다시 빼앗기고 말았으며 선종 역시 11년 재위한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금나라의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즉위한 위소왕과 선종은 둘다 암군으로 불려도 크게 지장없는 무능력한 군주였습니다.

한명의 무능한 군주가 나오기도 힘든데 연속으로 등장한 암군들로 인해 금나라는 북방의 패권을 잃어버리고 수도마저 빼았겼으며, 그저 남쪽으로 쫓겨가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남쪽의 송나라와 연합은 커녕 의미없는 공격으로 국가의 위기를 자초했고, 쫓겨난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치를 일삼은 선종의 잘못이 위소왕보다 좀더 크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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