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찾아온 경술국치일과 매국노 윤덕영
매년 8월 29일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이날은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한 날입니다.
그래도 실날같은 목숨을 이어가던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가 대한을 강제로 빼앗아갔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사실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말고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강제로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것은 1910년 8월 22일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직후에 바로 발표하지 않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에 발표한 것이고, 그래서인지 우리는 8월 22일보다는 29일에 좀더 무게를 두는듯 합니다.
하지만 이 조약은 효력을 가질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융희황제는 조약에 동의할수 없다면서 버티는 중이었고,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이 황제를 압박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들이 바라는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매국노 윤덕영이 등장합니다.
윤덕영은 조부 윤용선을 뒤에 엎고 별다른 능력도 없이 승승장구하며 세도를 부린 인물인데, 특히 자신의 조카가 융희황제의 황후로 책봉되자 황후를 배경으로 온갖 패악질을 일삼은 인물입니다.
당시 일제는 대한을 빼앗기위해 일진회 등의 친일단체를 조직해 병합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신하들을 움직여 광무황제와 융희황제를 압박했지만 전혀 일본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덕영은 광무황제를 만나 집요하고 끈덕지게 협박과 회유를 통해 결국 광무황제의 양보를 끌어냈습니다.
당시 윤덕영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나중에 친일로 변절하여 일제에 협력했던 윤치호조차 윤덕영의 매국행위를 비판할 정도로 나라를 팔아먹는데 진심인 인간말종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8월 22일 마지막으로 진행된 대한제국의 어전회의에서는 옥새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일제와 매국노들이 융희황제에게 조약에 옥새를 찍을것을 강요하자, 황후가 몰래 옥새를 가지고 도망친 것입니다.
결국 황후가 치마 안에 옥새를 감추고 버티었는데 아무도 황후의 치마 안에 손을 댈수없어 망설이고 있던 순간 황후의 큰아버지 윤덕영이 나타나 치마를 들추고 옥새를 빼앗아 강제로 날인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경술국치에는 이완용을 비롯한 대신들보다는 대한제국의 황제들을 설득하고 회유했으며 나중에는 황후의 치마를 들추고 옥새를 빼앗아간 윤덕영의 공이 가장 크다고 볼수 있지만, 워낙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의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윤덕영의 이름이 묻히는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이런 윤덕영의 공을 인정해 작위와 큰 돈을 하사했고, 윤덕영은 이완용의 집보다 네배정도 큰 2만평의 대저택을 소유할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축구장 8개 정도의 넓이고, 그 안에 조선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집이었다는 벽수산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윤덕영은 이후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여 대한의 독립을 주장한 사건으로 광무황제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일제에게 받은 돈과 백성들을 수탈한 돈으로 사치스러운 벽수산장을 지었으며, 당시 그의 재산이 100만원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돈을 현재 화폐로 환산하면 거의 65억 정도이니, 윤덕영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서 살았는지 알수 있을 정도입니다.
올해도 찾아온 경술국치일이지만 아쉽게도 방송이나 교육현장에서는 오늘에 큰 의미를 두는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법적인 늑약을 통해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날에 대해서도 널리 홍보하고 가르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올해도 경술국치일은 조용히 지나가는 모양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