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뛰어난 능력과 처체술을 보여준 유기

hasutalchul 2024. 8. 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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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는 원나라 말기에 시행된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방국진의 반란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공격을 많이 받았고, 곳곳에서 전공도 세웠지만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결국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명망높던 유기의 이름을 듣고 수많은 할거세력들이 그를 포섭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모두 거절했고, 결국 끝까지 공들여 자신을 대접한 주원장의 뜻을 받아들여 그쪽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주원장은 그때 유기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경을 점령하고 근거지로 삼았으며, 서쪽의 가장 큰 세력이었던 진우량과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전략을 내놓아 주원장군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결국 파양호 대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주원장은 형주일대까지 장악했으며, 동쪽의 장사성마저 토벌하고 강남지역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주원장은 마침내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이전의 오왕에서 명나라를 건국했으며, 서달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북벌을 단행해 원나라의 수도였던 대도를 함락시키고 원나라 순제를 응창부에서 죽게 만들며 몽골을 완전히 몰아내고 통일왕조를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한 고조 유방에게는 나라 살림을 맡아 처리한 소하와 전략가 장량, 뛰어난 장수 한신이 있었다고 한다면 주원장에게는 국가의 살림을 맡은 이선장과 끊임없이 훌륭한 전략을 내놓은 유기, 전선에서 군을 지휘하며 승리한 서달이 있었기 때문에 또다시 통일왕조를 세웠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명나라가 건국된 이후 유기는 집중견제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상시에도 강직한 성품 덕분에 정적들이 많았는데, 주원장을 초기부터 보좌한 이선장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유기는 모든이들의 적이 된 것입니다.

결국 회서출신 귀족들의 눈밖에 난 유기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모습 덕분에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공신들을 죽일때 먼저 벼슬을 버리고 떠난 장량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야인으로 돌아갔지만 유기는 끊임없는 공격과 탄핵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로인해 말년에는 빈궁한 상태로 끼니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래도 오히려 이런 모습 덕분에 주원장이 돌변하여 개국공신들과 귀족들을 수없이 죽일때도 유기는 살아남을수 있었으며, 이선장과 호유용 등 회서출신 귀족들이 전부 제거될때도 유기와 가족들은 무사할수 있으었으니 그의 현명한 처세 덕분에 그의 집안은 화를 당하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다만 유기는 고향으로 내려가 고생하던 와중에 병으로 죽었는데, 이것을 두고 그의 정적들이 벌인 독살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정도였고 그가 죽자 그와 대립하던 귀족들이 만세를 부를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성격이 과연 어느정도였는지 알수 있겠습니다.

평생동안 강직한 성격 덕분에 정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뛰어난 능력 덕분에 일개 군벌이었던 주원장을 보좌해 좋은 전략으로 그를 결국 황제로 만들었으니 유기의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에 주원장이 결국 피바람의 칼춤을 출때도 현명한 대처로 제거당하지 않고 목숨을 보존할수 있었으니, 그의 현명한 판단으로 인해 명나라 개국공신 중에서도 몇 안되는 생존자로 남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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