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동아시아 역사를 뒤흔들어 놓은 선비족

hasutalchul 2023. 11. 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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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은 조선에 복속되어 있던 동호의 일파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동호는 강력했던 조선과 혼동되어 기록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였는데, 조선이 해체된 이후에는 선비족이 갈라져나오면서 독립된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선비족의 기록이 최초로 보이는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입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시절부터 활약한 장수인 부분노를 기록하는 가운데, 유리왕 시기에 고구려를 침범한 선비족을 굴복시켜 복속시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비족 전체를 복속시킨 것은 아니고 그 일파를 고구려가 속민으로 삼았던 모양입니다.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중원을 차지했던 서진왕조가 북방 이민족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면서 화북지역은 텅빈 무인지경이 되어버렸는데, 이때 선비족이 연나라 지방을 차지하고 자립하면서 선비족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됩니다. 

모용선비의 손에 의해 건국된 전연은 고구려를 침공하여 도읍인 환도성을 함락시키고 폐허로 만들었으며, 미천태왕의 시신과 태후를 포로로 잡아 귀환하는 전과를 올립니다. 이후 고구려는 무릎을 꿇고 미천태왕의 시신은 찾아왔으나 태후는 한참 후에 돌아올수 있었고, 한동안 연나라와의 전투는 하지 못하고 수세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저족인 부견이 이끄는 전진에 의해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이미 약해져 있던 북연은 멸망하고, 한동안 수도 장안에 억류되어 있던 선비족들은 동진과의 전투에 패하고 분열되기 시작한 상황을 이용해 다시 연나라땅으로 돌아가 모용수의 지도아래 후연을 세우고 자립하게 됩니다. 
모용수는 선비족의 명장답게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 뒤를 계승한 모용희는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연패하고 숙군성을 비롯한 중요 근거지를 잃어버리면서 결국 고구려출신의 고운에게 찬탈당하며 후연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후연의 뒤를 이은 북연은 고구려의 부용국으로 존속했지만, 선비족의 또다른 갈래인 탁발선비가 건국한 북위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북연의 수도인 용성이 포위당하자, 장수태왕이 보낸 고구려군이 파견되어 당당하게 도성 안으로 들어가 모든 보물과 무기를 꺼내 고구려로 빼돌렸으며 모든 성을 비우고 사람들을 잡아 후방으로 호송하고 있는데도 북위군이 쳐다만 볼뿐 전혀 공격하지 못했다고 하니 당시 고구려와 북위의 국력차이를 알수 있습니다.

 

북연을 멸망시킨 북위는 화북일대를 통일했지만 고구려에 대해서는 깍듯한 자세를 취했고, 백제와는 여러차례 전쟁을 치렀습니다. 백제를 다시 강국으로 끌어올린 동성왕은 북위군과 여러차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그로인해 남조의 제나라는 백제를 추켜세우는 기록을 남길만큼 북위군은 백제에 철저한 패배를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북위는 적극적으로 한족의 문화와 전통을 받아들이는 한화정책을 실시하다가 국방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었다가 다시 북주와 북제로 바뀌면서 대치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국력이 약한 북주에서 겨울에 강이 얼면 북제가 넘어오지 못하게 강의 얼음을 깼다고 하는데, 금방 이런 차이는 역전되어 이제는 북제측에서 먼저 강의 얼음을 깨야 할 정도로 국력차이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던중 577년 북주의 무제는 북제를 멸망시켰으며, 그 여세를 몰아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배산전투에서 고구려의 온달이 이끄는 선봉대의 습격을 받아 패배했습니다. 이 전투는 나름 고구려와 북주의 첫 전투인데도 다른 중국쪽 사서에는 기록되지 않고, 삼국사기를 비롯한 사서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북주는 바로 어린황제가 즉위하고 어지러워졌으며, 자신의 손자에게서 국가를 찬탈한 양견의 손에 의해 멸망하고 수나라가 건국되었습니다. 수나라는 장안일대의 선비족을 중심으로 한 관롱집단이 주도하여 견국한 국가였으므로 선비족의 풍습과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이것은 수나라를 찬탈한 당나라 역시 공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나라의 뒤를 이어 건국된 당나라는 워낙 강력하고 화려한 국가를 건설했는데, 그래서인지 중국측에서는 당나라가 한족국가라는 날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당나라 태종의 후궁이던 무측천이 태종의 아들인 고종의 후궁으로 들어갔다가 고종의 정식 황후가 되는 모습에서 북방민족의 전형적인 모습인 형사취수의 풍습이 보이기 때문에, 당나라는 아무래도 한족보다는 선비족이라고 판단됩니다. 아마 당나라가 한족의 입김이 더 강한 국가였다면 아버지의 여자를 취한 고종에게 비난이 집중되었을텐데도 그런것 없이 황후까지 되어 측천무후까지 되는 모습을 보면 당나라는 선비족의 국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907년 당나라는 주온의 손에 의해 멸망하면서 선비족은 이제 더이상 역사의 주류에 올라서지 못합니다.

한족과 함께 지내던 선비족들은 전부 한족에 동화되어 사라졌으며, 예전 선비족의 땅에 남아있던 선비족은 완전 소수민족으로 전락해버렸으니 몇백년동안 동아시아를 뒤흔들었던 선비족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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