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당태종 이세민
사방팔방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나는 중에도 고구려를 원정하면서 수나라의 모든 역량을 깎아먹은 양제는 결국 반란군을 진압하는 대신, 남쪽 강도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최소 수나라가 망하더라도 남쪽의 부유한 경제력을 이용해 살아남을 생각이었던것 같은데, 그러면서 자신의 친위군을 이끌고 강남지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술만 마셔댔다고 합니다.
이 무렵 수나라의 수도인 대흥성은 양제의 손자인 양유가 지키고 있었지만 어린아이라 통솔이 잘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산서성 태원을 지키고 있던 이연을 설득하여 대흥성을 차지해버린 것입니다.
원래 이연은 담이 작은 사람이고, 수나라를 배신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양제의 눈밖에 난 사건을 계기로 반란을 일으킬지 고민중이었는데 그의 둘째아들인 이세민이 이연을 설득하여 거병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수나라의 수도인 대흥성을 점령하고 장안으로 명칭을 바꾼 이연은 새로운 당나라를 건국했고, 그 과정에서 이세민은 가장 큰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에 맞서 싸우던 하북지방의 할거세력을 하나하나 무찔렀습니다.
기병의 전문가 설거와 싸우다가 거의 패퇴할 지경까지 몰리긴 하지만 결국 승리했고, 유무주를 격파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거기에 하북지방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왕세충과 두건덕을 동시에 공격하여 사로잡으니, 이세민의 전공이 정말 가장 눈부셨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연의 후계자는 이세민이 되어야 하는게 당연해 보이지만, 당고조 이연은 그의 맏아들 이건성을 태자로 세웁니다. 분명 전공을 가장 많이 세우고 결정적인 활약을 한것은 이세민이지만 큰아들을 태자로 세운 이연은 나름대로 이세민을 견제하기위해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태자인 이건성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이세민을 독살하려 했다는 기록도 보이지만, 이것은 나중에 이세민이 황제가 된 후 역사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기록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기는 힘들어보입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을 모아 정치적인 입지를 굳히던 이건성에게 무력만 가지고 있던 이세민이 큰 위협을 느꼈다고 하니, 이것이 후에 일어나는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626년 이세민은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형인 이건성과 동생인 이원길을 죽이고, 아버지 이연마저 밀어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아마도 아버지마저 형을 좀더 믿어주고, 자신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나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이것 때문에 후세사람들은 이세민의 잔학함을 많이 비판했습니다. 형과 동생을 직접 죽였을 뿐만 아니라, 동생의 처를 자신의 후궁으로 들이면서 더욱 도덕적인 비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손에 피를 묻히며 황제가 된 이세민은 이른바 정관지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의 황제였던 수나라 문제의 국력에는 미치지 못했고, 사방으로 대외원정을 거듭하면서 국력을 소모하는 가운데 자신에게 비판적인 역사기록을 말살하고 이전 역사서를 검열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는 등 여러가지로 좋지 않은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대외원정은 성공적이어서, 630년 동돌궐의 힐리가한을 굴복시켰으며 640년에는 실크로드 지방까지 당나라의 직접 지배영역으로 포함시키는 원정을 성공하게 됩니다.
티베트 근처에 세력을 크게 가지고 있던 토욕혼마저 격파했으니 정말 이때는 당나라에 대항할 세력이 오직 한군데, 고구려만 남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구려는 수나라때부터 맞붙어싸워 패전을 거듭한 곳이었기 때문에, 이세민은 주변부를 전부 정리한후 고구려 원정을 시작하게 되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