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태평천국운동
청나라가 건륭제 시기부터 쇠퇴의 조짐을 보였고, 그때부터 시작된 부정부패와 팔기군의 약체화로 이미 패망의 조짐을 보이고 있을무렵 서양세력은 중국시장의 개방을 위해 아편을 판매하며 청나라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서양의 기독교를 받아들인 홍수전이 1851년 배상제회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큰 국면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들 배상제회는 당시 힘든 삶을 살고 있던 광서성의 소수민족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세력을 키워나갔고 특히 그때까지 잔존하던 반청세력마저 흡수하면서 더욱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후 1853년 청나라에서 가장 부유하고 경제 규모가 컸던 강남지방으로 진격하여 남경을 점령하고 천경이라 이름지은뒤 자신들의 수도로 삼았으며, 이때까지 명나라 주원장이 세운 황궁이 남아있었는데 이곳에서 정식으로 태평천국을 건립합니다.
그리고나서 민족주의적 색채를 앞세운 태평천국군은 북벌군과 서정군을 조직하여 청나라를 공격합니다.
북벌군은 너무 빠르게 수도인 북경을 공격하려다가 고립되고 보급이 되지 않아 전원 전멸하게되는 최후를 맞지만, 태평군의 서정군을 맡은 석달개는 성공적으로 원정을 완수하여 앞으로 10여년간 태평천국이 버티게 되는 힘을 만들어줍니다.
결국 풍요로운 강남지방과 장강유역을 장악한 태평천국은 청나라 조세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막대한 부를 천경에 쌓았으며 이 재산을 바탕으로 존속했던 14년간 백성들에게 조세를 거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청 조정의 골칫거리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한족지주인 증국번이 상군이라는 사병을 조직해 반격에 나섰고, 이후 청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이홍장의 회군이 나타나 서양식 무기로 무장한 군벌로 성장하며 태평군과 싸움에 나섰습니다.
이후 서양 선교사들과 서양 조차지를 공격하는 태평군에 대항하여 서양 군인들도 태평군과 싸우게 되니, 이제 태평천국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포위형세가 되고 맙니다.
그런 상황에서 청군이 천경을 포위하고 성을 공격하자, 서정에 나섰던 석달개가 돌아와 청군을 완파하고 나름 정예군이었던 4만의 팔기군과 녹영병을 전멸시켰습니다.
이후에는 18만의 병력으로 다시한번 청나라가 천경 공격을 시도하자 다시한번 청군을 크게 격파하면서 이제 중국번이 거느린 상군만이 태평천국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나아졌지만 이제는 태평천국에 내분이 발생하여 고급간부들이 서로를 죽이고 견제하는 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나중에 청군을 전멸시킨 석달개가 돌아와 이들을 중재하고 갈등을 봉합했지만 그때까지 주색에 몰두하던 홍수전과 그 일가가 합세하여 태평천국의 마지막 명장인 석달개까지 몰아내니 이제는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나마 이수성이라는 충성스러운 장군이 있어 버티고 있던 태평군이지만, 곳곳에서 확보한 영토를 잃으며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천경이 다시 포위된 상황에서 1864년 지도자였던 홍수전이 사망한 후 한달만에 천경이 함락되면서 태평천국은 14년의 존속기간을 마치고 멸망합니다.
이때 남경이 함락되면서 청군이 진입하여 모든 이들을 죽였고, 곳곳에서 일어난 약탈과 방화로 남아있던 명나라 황궁은 전부 불에 타버렸으며 이곳에 있던 막대한 재화는 청군이 전부 빼앗아 갔다고 전해집니다.
태평천국은 청나라 말기 힘들게 살던 농민들을 기독교 교리와 평등사상으로 유혹했고, 결국 그것을 바탕으로 청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강남땅을 점령하여 대치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지주들과 부자들을 공격하여 일반 백성들에게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도 싸웠다고 전해지니 당시 강남지방의 농민들이 이들을 환영한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태평천국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면서 진압되었는데, 세계의 전쟁사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7840만의 사상자를 기록한 2차 세계대전과 4천만에 육박하는 사상자를 낸 몽골의 전쟁 이후 세번째로 많은 2500만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조금 보수적인 수치이고, 많게는 3천만에서 7천만에 이르는 인명피해가 났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니 이때 청나라가 입은 인적손실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은 조세를 담당하던 강남지방이 쑥대밭이 되어버렸으니 청나라의 조세수입은 이후 한동안 격감해버렸고, 이때 나름 청이 가지고 있던 주력부대를 전부 소모해버려 이후 서양세력이 쳐들어와 북경을 점령하고 약탈해도 이것을 막을수 있는 힘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한족의 힘보다는 만주족의 힘으로 나라를 이끌어온 청나라였지만, 이제는 상군을 이끈 증국번과 회군을 이끈 이홍장의 손에 청나라가 넘어가버렸기 때문에 청나라는 더이상 만주족보다는 한족의 손에 운영됩니다.
이후 이홍장이 서양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며 중체서용을 강조하는 양무운동으로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지만, 이 성과로 인해 길러진 북양군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전하고 맙니다.
결국 일본정부 예산의 4년치에 해당하는 2억냥을 전쟁배상금으로 지불하며 청나라는 완전히 끝나게 되니, 태평천국이 청에 미친 영향은 정말 지대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