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산성 전투

2021. 1. 26. 18:26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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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산성전투 (naver.com)

 

황석산성전투

정유재란 때인 1597년 9월(음력 8월) 경상남도 함양에서 벌어진 전투. 1597년(선조 30) 9월 24일(음력 8월 14일)부터 9월 28일(음력 8월 18일)까지 안음현(安陰縣,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의 황석산성(黃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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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산성 백성의 전투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hani.co.kr)

 

황석산성 백성의 전투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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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임진년의 전투 이후, 1597년 정유년에 왜군이 다시 쳐들어 왔습니다.

임진년에는 웅치와 이치전투에서 패해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했지만 이듬해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성을 허물어버려 진주에서 전라도로 가는 길이 뚫리고 맙니다.

 

하지만 명과 왜의 화의교섭이 진행되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전쟁이 정유년에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는 왜의 실권자 히데요시가 전라도를 점령하고 무차별 살육을 지시하면서 전라도 일대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임진년에 조선의 배후기지로 활용되던 전라도를 파괴하면 명과의 협상에서도 좀더 유리한 입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칠천량에서 원균이 조선수군을 시원하게 바다에 수장시키고 나서, 이제 왜군은 섬진강을 따라 전라도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 길목에 있던 함양의 황석산성에서 전투가 일어난 것입니다.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공격하던 왜군중 황석산성을 공격한 것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우군이었습니다. 총 8만의 왜군에 맞서 총 7천의 조선군민들이 성에서 수성전을 하게 됩니다.

이 황석산성은 험한 지세에 있어 공격이 쉽지 않은 곳이었지만, 총 길이 2.7km의 큰 성이라 이정도의 인원으로 지킨다는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역사서에서는 왜군이 하루만에 공략에 성공하여 조선군 500명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꽤 큰 규모의 성을 수비한 것은 조선군이 아니라 그 안에 있었던 민초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8만 정예병의 공격은 계속되었고,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18일 새벽에 성이 함락되고 맙니다. 조선군민들은 한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살해당했으며 조방장 백사림은 목숨을 건져 살아남는데 성공했습니다.

워낙 생존자가 없던 싸움이라 확실히 몇명이 성안에 있었고 왜군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당시 성안에 약 7천명 정도 조선군민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들이 전부 죽은것은 맞는듯 합니다.

그렇지만 왜군도 8만 병력중에 황석산성을 지나 전주에서 북상한 병력은 2만 7천 정도였다고 하니 상당수가 황석산성 전투에서 피해를 입고 전투력이 급감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패하여 전멸한 전투지만 히데요시가 피해를 입은 우군 장수들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낼 정도였다고 하니 결코 패전의 기억으로만 치부할수 없는 전투라고 봅니다.

워낙 왜군이 큰 피해를 입었고 그 치욕이 얼마나 깊었으면 숙종때 황석산성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한 황암사를 조선을 병탄하자마자 바로 불태워버리고, 안의군을 없애고 면으로 강등시켰으며 현청을 철거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황석산성 전투를 재평가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패전의 기억이라며 별로 평가하는 곳도 없었지만 이제는 별다른 저항없이 진군하던 왜의 우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전투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것입니다.

당시 누구의 명령도 없었지만 가족들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그 험준한 황석산성에서 싸우다 죽어간 우리 선조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진주성과 황석산성, 그리고 남원성에서 죽어간 우리 조상들을 위해 한번 직접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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